완연한 가을 향기를 품은 이른 새벽 상쾌한 공기가 나를 감싸안았다. 그 누구라도 설렘을 감출 수 없게 하는 공기의 움직임.

깨끗하다. 맑다. 세 봉우리가 마치 한 컷의 사진처럼 한눈에 팡팡팡.

시원하다. 투명하다. 잠시 라디오를 꺼두고 흐르는 계곡물의 청아한 물소리에 귀기울여본다.

산장은 공사중이네. 공사가 끝나고 난뒤 거울도 같이 깨끗해졌으면.

나무 데크 계단즈음 올라왔을까? 나는 지금 어느만큼 위에 있을까 하며 뒤를 돌아본다. 오르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인지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흔적으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인증샷을 남겨보았어요.

지금까지 왔던 백운대 중 가장 깨끗한 시야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이 꽤 있어서 서둘러 후다닥 브이! 어머나 손가락에도 살쪘나봄.

요즘들어 부쩍 이유없는 짜증과 쓸데없이 날이 선채로 뾰족하게 굴었던 미운 나의 모습들을 내려놓고 달래주고 싶어 계획했던 이번 등산. 아이에게 화내고 다그치는 일이 꽤 빈번했던 그때의 내목소리와 표정이 그 무엇과 닮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게 싫었던 순간들에 대한 총체적 반성과 다짐으로 비우고 또 채우고 싶었던 시간. 내가 오늘 흘린 땀방울만큼 정신 수련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토록 멋진 하늘의 숨소리, 친숙한 나무의 냄새, 포근하기까지한 산의 기운이 나를 붙들어주고 달래주며 껴안아주었으니, 그 기쁨으로 나는 충분히 충만했다.

뜻밖의 행운과도 같았던 어제의 짧은 시간으로 인해 경직됐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기도 했다. 참 기분이 좋고 즐거웠고 에너지가 샘솟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찍어본 셀카도 너무 잘나와서 몇십장은 찰칵한듯.

나의 사랑 숭아숭아 복숭아와 함께 멍. 한입먹고 또다시 멍.
정말이지 내려가기가 싫었다. 따스한 햇살, 적당한 풍량과 풍속의 바람, 누군가가 틀어놓은 색소폰 연주음악에 그냥 이대로 누워있고 싶어라. 점퍼의 후드를 둘러쓰고 바위에 살짝 기대서 산뜻한 기분을 음미하는 순간은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한 내것이었다.

완벽하게 아름답다.

잔잔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나의 마음은 그러한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기 위해 더 차분해져야 한다. 모난곳 없이 둥글둥글하게 잘 다듬어 가자.

정말이지 정상에서 내려가고 싶지않았던. 그래서 뜸들이고 또 뜸들이던 무거운 발걸음을 씩씩하게 옮겨보아요. 내가 왔던 길. 안녕.

햇살에 반짝이며 빛나는 돌길이 참 예뻤던.

등산화를 새로 사고싶다. 황토색으로 약간 워커같은 스타일로다가. 팀버랜드 느낌으로 그렇게 쌈박하게 목이 긴 녀석으로.

하산 완료 후 마무리는 초코초코 달콤 가득함으로 쉐킷쉐킷.

목구멍부터 가슴까지 시원한 뭔가가 필요한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냉 미숫가루. 계곡물소리의 흐름에 맞춰 벌컥벌컥 세번에 나뉘어 다 마셔버린다. 좋구마이. 그리고나서 마무리 스트레칭하는데 배가 꿀렁꿀렁 춤을춘다. 쏟아낸 칼로리 단숨에 업은 느낌 이지만 기분이가 좋으면 그걸로 됐지요.

싱그러운 하루의 시작을 열어주어 고마운 너 또 만나러 올게!

집에 돌아와서는 또 숭아숭아 복숭아 하나 츄릅츄릅.
등산은 뭔가 중독성이 대단하다.
종아리 허벅지 등 팔뚝까지 온몸의 근육이 땡땡하게 아파오지만 금세 또 가고다는 생각이 깃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듯. 내가 한걸음 다가가면 두걸음 나에게 다가와 나약한 나의 마음을 다잡아주며 토닥여주는 듯한. 그런 숲속에 둘러쌓인채 오르고 내리며 걸어가는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욕심부리지말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이제부터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같이갈래 기차바위 (0) | 2020.09.30 |
---|---|
모닝 러닝 : StaY wEiRd (0) | 2020.09.25 |
H’s Baking note - 쫀득말차쿠키 (0) | 2020.09.17 |
옥햄베 PIZZA (0) | 2020.09.11 |
아삼아삼하다 (0) | 2020.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