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충 채집 떠나자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 성화에 못 이겨 메뚜기 사냥을 나선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전 햇볕이 무지하게 뜨거웠던, 모자 없이는 눈을 뜰 수 없었던 어느 일요일의 오후.

사냥을 나선지 몇 분 안되었을 무렵, 지나가던 분이 방아깨비 한마리를 주신다. 선명한 연두빛으로 날씬하게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더라는.
곤충 채집 노래를 불렀던 딸은 사실 곤충을 못 만진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잡아달라고 하는지. 아주 잠깐 관찰 하고 본인 카메라로 사진 찍고 도망간다ㅎㅎㅎㅎㅎ
사실 엄마도 그렇게 썩 곤충 만지는 걸 좋아하진 않는데 말야.

잠자리를 잡았다. 낮게 비행하고 있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가을이 한걸음 내 곁으로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었다.
새빨간 색이 아닌 짙은 황색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성숙 암수 였지 싶다.
느낌도 없는 얇은 날개를 손가락으로 엄마처럼 잡아보라고 여러번 권유해도 절레절레 마다하며 소리지르며 뛰어가는 딸.
날개 한쪽이 살짝 뜯어져 있는 상태여서 곧바로 놓아주었다. 그래도 훨훨 잘 날아가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왼쪽의 저 풀숲은 그야말로 메뚜기 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메뚜기가 많았다.
빽빽한 풀들 사이로 막대기를 넣은 채로 몇 발자국만 걸어가도 흔들리는 풀들 사이로 메뚜기들이 뛰어 올랐다.
하지만 구지 풀숲을 흔들지 않아도 풀 위에 앉아있는 메뚜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풀 위에 앉아있는 메뚜기를 발견하면 아이 아빠가 잠자리채로 재빨리 낚아챈다.
그러면 내가 망 안에 있는 메뚜기를 잡아서 채집함에 넣는다. 채집함의 문을 살짝 열어서 망으로 감싼 후에, 메뚜기가 망에 있는 채로 최소한의 터치만으로 쉽게 함 속에 넣을 수 있다.

하늘이 참 높아진 듯 했다. 집 근처에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 있는 건 아이에게 참 좋은 일이다.

사냥을 나선지 30분도 채 안되서 메뚜기 12마리를 잡았다.
발견하고, 낚아채고, 채집함에 넣고. 이 반복되는 과정이 사실 재미있긴 했다. 잘 잡아지니까 흥이 올랐던 게 아닐까 싶다.
한쪽 면에 딱 붙어 있는 저 메뚜기가 잡았던 것들 중에서 제일 큰놈이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나가고 싶은지 대부분 뚜껑에 붙어 있었는데, 저 큰놈은 한참을 저렇게 있더라. 어서 문을 열어라! 내가 무섭지 않느냐! 하며 위풍당당하게 힘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채집함을 들고 있으면 메뚜기들이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느낌이 내 손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는 그것도 싫다며ㅎㅎㅎ 사진만 열심히 찍는다.
뚜기들과 마지막 안녕을 하기 전에 오늘 우리에게 잠시 잠깐 웃음을 주어 고마웠던 열 두 마리의 메뚜기를 기록해본다.

자 이제는 뚜기들을 놓아 주어야 할 시간.
너희들 삶의 터전으로 돌아 가렴. 잠깐이지만 갇혀 있어서 답답했겠지? 야무지게 뚜껑을 열어서 다시 자연 속으로 돌려 보내준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사방으로 메뚜기들이 튀어 오른다.
다같이 점핑점핑♬
이 모습을 영상으로 찍던 아이 아빠는 놀라서 핸드폰 떨어뜨릴 뻔하고, 아이의 다리에 살짝 착륙했다가 다시 풀 속으로 뛰어든 한 마리 때문에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다. 두 번 다시 곤충 채집은 안 할 꺼야 라며 흐흐.
살짝 힘이 없어 보이는 몇몇의 메뚜기들까지 풀숲 속으로 안전하게 보내주고 오늘의 사냥을 마무리 했다♥
어렸을 적 길다란 이쑤시개를 무지개색깔로 칠하고, 하드보드지에 구멍 뚫어서 아래위로 이쑤시개 끼워서 만들었던 방학숙제로 제출했던 곤충채집함이 생각난다.
매미 잡아서 매미 허물을 고스란히 제출했던 어렴풋한 기억.
우리 아빠 엄마 참 열정적으로 뭐든 같이 해주셨었지.
짧지만 강렬했던 메뚜기 사냥과 순간의 추억팔이로 충만했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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