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이와 겨울맞이
머리속이 뒤죽박죽 복잡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질땐
나홀로오 산에가자 룰루랄라

도봉산역 1번출구에 도착하니 아침 일곱시 이십분. 계획보다 좀 늦어서 서둘러본다.

이른아침임에도 갖가지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상인들. 코로나 때문에 참 많이 힘드시겠지 싶다.

요 주차장을 지나서 가다보면, 뜨끈한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등산용품 가게,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다 있는 듯한 골목을 지나 도봉산 산행로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도봉산은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고고.

마당바위를 거쳐서 신선대까지 갈 예정이므로 무조건 천축사, 자운봉 방향으로 이정표를 따라서 가본다.

지리산이 최초의 국립공원이구나. 지리산은 언제쯤 또 갈 수 있을까나. 도를 닦는 봉우리라는 뜻의 도봉산. 올라가서 도 닦고 오자꾸나.

일곱시 오십분. 여기저기 사진찍으면서 가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도 닦으러 도봉이 품속으로.

도봉산을 대표하는 세 봉우리인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중 선인봉의 포토 스팟. 날씨가 좀 흐렸다.

핫팩을 두개 챙겨왔어야했는데에, 한주머니에 하나씩 말이다.
하나밖에 없으니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돌아가면서 핫팩을 넣어 양손을 녹이며 힘차게 전진.

천축사에 다다랐다. 이번엔 이어폰 없이 자연의 소리와 내 숨소리에 집중해서 오르기로 하였는데, 오호라 이거이 참 좋구나. 갈수록 거칠어지는 숨소리, 고요하게 울려퍼지는 사각사각 낙엽 밟는소리, 비행하는 새들의 움직임소리. 좋았다.

조금만 더 가면 마당바위. 많이 이른 시간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부딪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당바위에 왔다. 기대했던 것 보다 좁았고, 평탄하지 않은 기울기있는 바위였다. 전망은 끝내주네. 피크시간대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앉아서 도시락 먹으며 쉬어갈듯하다.

마당바위를 넘어 신선대를 향해서 또 다시 전진!
여기까지도 거의 돌 계단을 오르는 길이었는데, 이 이후로는 훨씬 더 가파른 돌 계단을 오르게 된다. 어느정도의 경사냐 하면,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멀리 쳐다보기 위해서는 목을 들어 있는 힘껏 꺽어서 하늘을 보는 듯 하게 봐야하는 정도.

날이 추워서 그런가. 목이 마르지 않더군. 500ml 생수병을 다 비우지 못하였다는. 출발할때 체크했던 이 날의 체감온도가 영하 6.6도 였는데, 어느정도 오르고 나선 땀이나서 그런지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꺅 드디어 고지가 눈앞이다. 여기는 해발 711m.

옴마야 저 표지판에서부터 신선대 까지 쇠봉 잡고 올라가는길 쬐끔 무서웠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추위가 파고들어 와서 그른가 백운대 가는길 보다 더 찌릿한 느낌.

♥ ♥ ♥ ♥

공기도 깨끗하고 하늘 맑은 날 이었는데, 구름이 꽤나 덮혔다. 저멀리 보이는 러블리 북한산. 꺄아 근사한 풍경이다. 살짝 눈발이 날린다. 올겨울 나에게 첫 눈. 하얗고 아주 작고 가벼운, 닿자마자 사라지는 솜사탕 한겹같이 녹아버리는.

자운봉의 위엄.

와 근데 정상에 오르니 이렇게 추울수가 없다. 뭐랄까 알싸한 공기가 나를 감싸는 듯한. 꽁꽁 얼어버린 손이 녹아들 태세전환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위대함에 사로잡혀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

선인쉼터에서 잠시 쉬어가자. 허벅지가 시렵다. 손도 너무 시렵다. 보온에 더 힘써봐야겠다 다음산행때에는.

뜨끈뜨끈 달콤한 핫초코 한잔 어때요?

호호 불기도 전에 이미 식어버리고 있어. 언능 들이키자구.

없으면 섭하쥬. 내사랑 사과는 빠질 수 없는 아삭아삭 내사랑.

하산길에 다다른 마당바위에서 사진을 남겨보았는데, 구름아저씨가 아직도 그득하네. 그래도 가슴 뻥뻥 뚫린다.

올랐던길 그대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길을 잘못들었나보다. 사람들도 많이 없구, 이정표도 안보이구, 낯선 느낌이 내려오는 내내 떠나질 않은듯 했는데 역시나 다왔더니 안보이던 계곡이 보인다. 그래도 헤매지는 않고 무사 도착 완료.
겨울의 초입 앙상한 가지들 때문일까, 같이 오기로 했던 친구가 못와서일까, 전례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려오는 내내 땀이 식으면서 추워져서 그랬을까. 쪼꼼 쓸쓸한 기운.

와우 하산 완료후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도봉산역까지 사람들이 무리지어 걸어 온다. 도봉산역에 다시 도착한 시간이 오전 열한시 십일분 즈음 이었으니 대략, 열시반정도부터 사람들이 등산을 시작하나보다. 에고고 심각하다 싶을정도로 사람들이 많더라는. 역시 요즘같은땐 일찍일찍 서두르는게 중요하다. 대형 꽃게로 진한 국물을 낸 김 모락모락 꼬치어묵 너무 먹고싶었는데 참느라 힘들었다 힝.

올해 97번째 등산이었다는 인자하신 아저씨가 남겨준 인증샷.사진만봐도 상당히 추워보이네. 다음번엔 더 따땃하게 재정비하고 가야지 싶다.
능선을 따라서 오르면 도봉산의 수려한 경관을 감탄하며 오를 수 있다는 아저씨 말에, 다음번엔 다락능선-포대능선-Y계곡 코스로 가봐야겠다.
뭐뭐인듯 척 하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무장해제 한채로 눈치안보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애교가 흘러넘쳐 마음이 따뜻해지는 귀하고 예쁜말들을 서슴지않고 하는 고운 사람 이고싶다. 머리속이 복잡하여 거대한 파도에 제압당하면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 이런 감정에 지배당하곤 한다. 현실 속 갖가지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느슨해지고싶은 마음인가보다. 봄도 아닌 가을도 아닌 11월을 타는 나.
12월 겨울 산행을 위해서 아이젠을 사야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