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사실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유인 즉,
단 한 문장 쓰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는 터라.
고르고 고르고 또 낱말을 고르고,
세줄 쓰고 다시 첫 줄로 가서 읽어보고,
다섯 줄 쓰고 나서 다시 첫 줄로 가서
읽어 내려오고 말이다.
이 과정의 무한 반복으로
아주 오랜시간이 걸려서 무언가의 글이 완성된다.
그것이 편지이든 보고서이든 어떤 종류의 글이든지.
어려서 부터 그랬던 듯 싶다.
그래서인지 금방금방 긴 글을 써내려 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한다.
대학교 1학년때 글쓰기 과목에서
동그라미의 꿈 이라는 제목으로
교수님의 폭풍 칭찬과 함께 A+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내 얼굴이 동그래서 동그라미의 꿈 이었다.
귀엽기도 하지.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이지 간절한데,
엄마 집 컴퓨터에 있는
내 대학생활의 모든 기록이 포맷되었다.
누굴 원망하랴.
소중하게 아끼고 보관하지 않았던
철없던 젊은 날 나의 불찰인 것을.
정성을 가득 담은 글이었는데 말이다.
아쉽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뭐랄까
시작하기도 전에 느끼는 숨막힘.
숙제를 떠안는듯한 부담감.
시간과의 싸움.
이런것들로 인한 귀찮음.
어쩌면 게으름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단 한 문장이라도,
완성하는데 오래걸릴지언정
뭐 아무렴 어때.
그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신경쓸 필요도 없고.
내가 하고픈대로 그저 내마음 가는대로
아무 조건, 아무 제약없이 그냥 그렇게.
가감없이
꾸밈없이
거짓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거침없이 쓰면된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공간인가.
그러고보니 벌써 꽤 오래전이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나의 지난 기억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나의 자그마한 생각들,
누구에게만 하고 싶었던 나의 그 수많은 감정들.
이런것들을 이따금씩 짧게 길게
여기저기 써내려가다보니
기억은 선명한 추억으로 남고,
생각은 가지런히 정리가 되고,
감정은 고스란히 치유가 그리고 위로가 되더라.
좋다.
나의 문장을 완성하는것 그리고,
누군가의 문장을 읽어나가는것.
마치 그 사람의 삶속에 잠시 살다온 듯한 느낌 이랄까.
나의 삶속에서 누군가와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같은게 정말이지 있다면.
그건 부담감을 안은 채 전해지는 짧은 안부 메시지나,
생사확인을 위한 단순한 집착의 반복,
어디론가 사라져가고 있는 용기라는 단어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닌,
긴 호흡으로 나의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그것이 어쩌면 진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쉬운건 없다.
그치만 쉽게 생각하려고
노력은 하고 또 하고 그럴 수는 있으니까.
쉽게 다가오고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시간들은
노력 없이 찾아 오지는 않을 수도 있을테지만,
또 어찌보면 이미 나는 훗날의 그 어떤 시간들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애쓰지 말기로 하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날이 참 좋다.
초록초록으로 온통 가득한 여기.
선명한 색깔의 꽃들.
살랑살랑 따뜻함과 시원함 그 어느 중간정도의 바람.
내가 좋아하는 밤색깔의 깨끗한 벤치.
새빨간 플랫구두.
보들보들 코듀로이 꽃무늬 에코백까지.
어느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것이 없다.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는 것처럼.
좋은 날 좋은 기분으로
산뜻하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시작이 켜켜이 쌓이게 되면
의미가 되어 남을테니까.